나는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몇 주 전의 일이다. 울산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왔고, 그 결과 한 마을에 6명의 주민이 고립되고 만다. 소방대원이 급히 출동하여 구조에 성공하였으나, 폭우로 인해 급격히 불어난 강물이 대원 중 한명을 덮치고 만다. 실종된 대원의 이름은 강기봉, 그는 결국 실종 11시간만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마주친 이 영상에선, 빈소에 방문한 문재인 전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침통하게 빈소를 지키는 대원들의 손을 잡고, 그를 마주친 대원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문재인은 한참 동안 대원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는다. 눈을 이따금씩 꿈뻑이며, 그는 그렇게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한다. 

우리가 지난 정부에서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그토록 박 대통령에게 분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가 분노한 것은 아이들이 바다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들이 천천히 그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갈 때, 그들을 구하지 못한 무능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갑게 식어버린 자식들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들의 손 한번 잡지 않고, 청와대 앞까지 찾아온 그들을 무시해버린 몰인정함, 비인간성에 분노한 것이 아닐까. 미안하다 한마디를 안하고 “뭐 이렇게 바라는 게 많냐” 며 핀잔을 주던 그녀 옆의 정치인들에 화를 내었던 것은 아닐까.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나라에 사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에 절망한 것이 아니던가.

문재인은 당시 화려한 공중파 촬영팀을 대동하지도 않고, 단촐한 보좌진과 함께 빈소에 왔다. 그를 찍는 카메라는 빈소에 있던 누군지도 모를 – 아마도 소방대원 중 하나이리라 – 사람의 핸드폰 카메라가 전부였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네요”.

그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가. 그 자리에 왔어야 하는 사람은,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던가. 거기서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유능한 정부 같은 건 됐다. 정치인 그놈이 그놈이다, 알고보면 다 똑같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게 겉치례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누가 목숨을 잃었을 때 그들의 가족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면목이 없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살펴보니 문재인은 참 여러 곳에 갔었다. 서문시장 화재현장, 울산시장 태풍 피해현장, 밀양 송전탑, 강남역 추모현장, 그리고 세월호. 한 두번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심이 없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일관되게 할 수는 없다. 단지 최근 4-5년의 일만이 아니다. 그의 인생이 계속 그러했다. 그는 35년을 인권 변호사로 일했다. 27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의뢰인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달변도 아니고, 미국의 여느 정치인들처럼 PC하지도 않은 그다. 최근에 그의 동성애 발언에 대해 큰 실망을 했고, 그 이후의 해명으로도 썩 후련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치열한 대선 토론의 모습보다 대통령 선거도 최순실도 없었던 어느 10월의 장례식장의 그를 더 무겁게 기억하기로 했다. 광화문 천막에서 유민아빠 옆에서 같이 단식하던 그를 기억하기로 했다. 지지자들이 내미는 손을 하나하나 거절하지 못해 피멍이 든 그의 손을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