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어제는 일찍부터 차를 빌려 쇼난 해변을 가기로 했다. ‘왜 하필 쇼난인가…’ 라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는 없었다. 료마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 목적은 그냥 일본에서의 운전에 익숙해지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지도 앱에서 검색을 해 보니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오전에 친구 조나선을 만나 일본을 떠날 때 주었던 선풍기를 돌려받기로 했다. 나도 굳이 필요가 없는 물건이지만, 그 역시 한번도 틀지 않았다고 해서 짐을 치워주는 느낌으로 도로 받아왔다. 그는 얼마 전 아자부다이(麻布台)에서 하츠다이(初台)부근으로 이사했는데, 운전을 해서 가는 김에 그의 집에 가서 선풍기를 받아오기로 했다. 초행길이기도 하고, 굉장히 좁은 골목이 많은 길이라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조나선의 집으로 갔다. 날은 굉장히 더웠고, 동네는 아기자기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어느 장면에서 본 듯한 골목길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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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했는데 조나선도 딱히 할 일이 없다고 해서 나의 즉흥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커피만 한잔 마시고 돌아올거야’ 라는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군소리 없이 따라왔다. 운전하는 길은 그야말로 실수 연발이었다. 폰 배터리는 일찌감치 다 되었고, 차량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야 했는데, 출구를 몇 번이나 잘못 빠져나갔다. 그도 나의 사정을 대충 눈치 챈듯 옆자리에서 적극적으로 길찾기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예정된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겨, 두 시간 반이 다 되어서야 쇼난 어디께의 리조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높게 솟은 야자나무와 약간 오래된 듯한 느낌의 리조트가 묘한 정취를 자아냈다. 하와이에서 보았던 동네와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 의외로 꽤 손님이 있는지 여기저기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사진에서 찾아본 바로는 날씨가 맑은 경우 후지산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안개가 잔뜩 껴서 멀리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변을 따라 걸으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했고, 이윽고 한 카페에 들어갔다. HOA Cafe라고 하는 곳인데, 정말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지만 도넛이 굉장히 맛있었다. 소시지가 든 프레즐 풍의 도넛이었는데, 단 맛은 전혀 없고, 담백한 빵에 쫄깃한 소시지가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커피 역시 적절히 쓴 맛에 아주 시원했다. 우리는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 최근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최근에 본 영화가 별로 없어서 얼마 전 무민 TV판을 보다가 졸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나에게 울버린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예전 집 근처 절에서 난투극이 벌어진다나. 좋아하는 절인데 거기서 피가 낭자한 폭력이 벌어진다니,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도 올 것 같았고, 저녁까지 여기 있을 이유도 별로 없었다. 도쿄로 올라가는 길엔 그가 음악을 틀었다. 우리는 가는 내내 음악 이야기를 했다. 그는 클래식이나 R&B를 변주해서 루프를 하는 음악을 즐겨 듣는데, 어떤 트랙은 40분짜리도 있다고 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들으니 꽤 운치가 있었다. 흥미를 보이니 평소에 즐겨 듣는 여러 앨범을 공유해 주었다. 일하며 듣기에 딱 좋은 음악들인 것 같다.

조나선을 내려다 주고 나니, 음악을 틀 방법이 없어졌다.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차를 몰아 돌아갔다. 그것도 나름 나쁘진 않았다. 아침에 듣던 클래식 음악이 생각났다. 최근에 갑자기 슈베르트를 듣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뭐가 무슨 트랙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종류는 아마도 피아노 즉흥곡인 것 같다. D899의 3번 트랙이 제일 마음에 든다. 아침 저녁에 TV를 보는 대신 이 음악을 튼다.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집에선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이제 곧 이사를 간다. 지금보다는 좀 좁아질테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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