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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떠난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게 되면 잦은 출장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에 미국에 다시 돌아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좀 기분이 묘했다. 작별 인사도 하고, 짐도 다 정리했는데 멋쩍게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내겐 유독 그런 일들이 많았다.

미국은 당연하게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짐을 풀고 나니 오후가 되어 가볍게 스탠포드로 산책을 하러 갔다. 한번 살아서 그런지 여행지에서 느끼게 되는 조급함이나 피곤함이 없어지고, 조금 여유가 생겼다. 살기 전에는 출장을 오면 어딜 갈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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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호텔이라는 점을 빼면 지난 1년 동안 여기서 보냈던 일요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익숙하게 들르던 곳을 아무렇지 않게 들러 필요한 것을 사다보니 도쿄에서의 긴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자주 가는 한국 마트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사면서 “그 동안 안보이던데”,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같은 소리를 듣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의외로 일주일에 한번 가던 때와 다를 바 없이 “맛있게 들어요” 만 듣고 왔다. 살 때에는 꽤 자주 가서 떡볶이도 공짜로 받곤 했는데, 한 달간의 공백이 전혀 크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주인이 특색없게 생긴 나를 금방 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밥도 먹고 산책도 했는데 시간이 남아 뭘 할까 궁리하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덩케르크가 9월에나 개봉하기 때문에 여기서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호텔 주변에 영화관이 꽤 많았지만, 늘 보던 (예전) 집 근처의 Century 20 Great Mall로 갔다.

예전 집을 들러보겠다는 센치한 이유도 없진 않았지만, 그보다 이 영화관이 드물게 지정 좌석과 리클라이닝 시트를 구비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이곳으로 갔다. 보통은 선착순이라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야 하지만, 여긴 조금 느지막히 영화를 보러 가도 문제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잠깐 조는 바람에 10분 정도 늦었지만, 상영 시간 초반 10분 이상은 광고를 트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음료도 하나 사고 여유있게 입장했다. 심지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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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까지 보고 나니 밤이 되었다. 말 그대로 언젠가 여러번 반복되었을 평범한 일요일 하루를 보낸 셈이다.  익숙한 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 늘 가던 길이라 네비게이션 한번 켜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모든 짐을 버리고, 많은 걸 놓고 도쿄로 갔는데, 막상 돌아오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동안 느낀 생경하지만 친숙한 감정에 어쩐지 허탈해졌다.

출장을 마치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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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쥴네 부부가 도쿄에 놀러왔다.

“차를 타고 어딘가 가자”라고 이야기가 되어 차를 빌리기로 했다. 이번에 이용한 서비스는 Anyca(エニカ)였다. 이 서비스는 말 그대로 자동차의 Airbnb라고 할 수 있다. 흔한 닛산이나 도요타 차종들도 있지만, 주로 고급 차종들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아마도 Getaround의 일본 버전인 것 같은데, “고급차를 빌릴 수 있다”에 좀 더 치중한 것 같았다. 렌터카 업체에서는 흔히 만나볼 수 없는 포르쉐들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큰 맘 먹고 포르쉐를 빌려보기로 했다. 빌린 차종은 마칸(Macan) S, 소형 SUV 라인업의 스포츠 모델인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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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 처럼 특정 위치에서 픽업하는 것이 아니라, 차 주인을 직접 만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연락을 주고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딴에는 공들여 정중한 일본어 메시지를 보냈더니 “영어가 더 편하겠네” 하며 주인으로부터 영어가 돌아왔다. 편했지만, 뭔가 더 굴욕적인 느낌…

알고보니 그는 요코하마에 거주하고 있었다.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대화를 시작하고 나니 뭔가 취소하기가 좀 애매했다. 다행히 픽업은 도쿄 메구로에서 가능했다.

인도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아무래도 고급 차이고, 오너가 직접 차를 인도하다보니 설명이 이것 저것 필요했다. 이런 부분은 신경써주고, 저런 부분은 어떻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차를 렌트할 때 보험이 필수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처가 나지 않는 편이 양 쪽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일단 렌트에 동의하면 면허증을 한번 더 확인하게 된다. 이 경우, 서로가 상대방의 면허증을 찍어 업로드하게 되어 있다. 크로스 체크를 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스크래치 등을 체크한다. 전면과 후면에 작은 찍힘 몇 개 정도가 있었다. 그리고는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얼마나 탈 것인지도 가볍게 물어봤다. 이건 아마도 필수는 아닌 것 같지만, 이번에 만나게 된 오너가 개인적으로 좀 궁금했던 것 같다.

꽤 긴 시간 (15분 정도)이 지나고, 드디어 오너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뭔가 내가 미덥지 못한듯 한참을 차 뒤에 서 있었다. 물론 내가 나에게 뭔가를 빌려줘도 그런 심정이었겠지만, 서류 작업 조금 하면 바로 차를 빌릴 수 있는 렌트카보다는 조금 더 귀찮고 마음이 쓰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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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들은 터라 아무래도 좀 조심스럽게 몰게 되었다.  일본의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우핸들이다. 위치가 반대이기 때문에 레버의 위치도 다들 반대다. 덕분에 깜빡이 레버를 켠다는 것이 와이퍼를 켜는 일이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어 실수가 좀 준 편이다. 그러나 이 차는 독일차라서 그런건지, 우핸들임에도 불구하고 레버의 위치가 좌핸들과 동일했다. 따라서 모든 학습이 리셋, 좌회전/우회전을 할 때마다 와이퍼가 켜지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친구 부부에게 정성을 다하는지 나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하네다 공항까지 차를 몰고 말 그대로 게이트 앞에서 그들을 기다렸다가 숙소까지 모시고 갔다. 아마도 이 정성을 쏟을 여자친구가 없기 때문이겠지… 원래는 이 차를 몰고 후지산까지 가기로 했지만, 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휴가를 내지 못해 다음 날 가볍게 근교를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는 차를 대충 몰아 가마쿠라로 향했다. 이번에는 신요코하마에 새로 난 도로로 잘못 빠지는 바람에 (네비게이션에도 반영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의 해변을 조금 걷는 게 전부인 여행이었지만.

차 이야기를 거의 안했는데, 아마도 내가 운동 성능이나 차의 기능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까지는 주로 BMW를 몰았는데, 이 브랜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갈 때 확실히 잘 가고, 설 때 잘 선다는 것이다. 이 차를 몰면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운동성능은 SUV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기민했고, 코너 등에서도 꽤 안정적이어서 모는 재미가 있었다. 편의 기능도 잘 구비되어 있었고 (하지만 이건 현대 기아차가 훨씬 좋을지도…)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다.  마음에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또 빌릴 생각이 들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일본의 도로환경에서 이 차의 덩치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가끔 좁은 도로에 접어들면 혹시나 나뭇가지에 스크래치라도 나지 않을 지 긴장을 바짝하게 되는 등, 빌리는 차로서는 그다지 좋은 점이 없었다.

반납 과정은 꽤 간단했다. 정해진 시간에 차를 가져다 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반납 장소가 요코하마였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꽤 길었던 것이 문제였을 뿐. 심지어 돌아오는 길에는 비 마저 추적추적 내려 신분 하락의 씁쓸함이랄까, 열패감을 더했다(우리는 의외로 포르쉐를 흠뻑 즐겼던 것이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주인이 우산을 줘서 비를 피할 수는 있었다.

이후로 차를 몇 번 더 빌렸지만, 애니카 대신 오릭스 카 셰어링을 이용하고 있다. 내가 이 서비스를 더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1) 주인과의 불필요한 메시지가 너무 많다 2) 대여 과정이 지난하다 3) ‘남의 차’라는 느낌 때문에 운전할 때 너무 조심하게 된다 정도인 것 같다. 포르쉐를 저렴한 가격으로 몰아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포르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걸 위해서 저 과정을 거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