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미국을 떠난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게 되면 잦은 출장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에 미국에 다시 돌아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좀 기분이 묘했다. 작별 인사도 하고, 짐도 다 정리했는데 멋쩍게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내겐 유독 그런 일들이 많았다.

미국은 당연하게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짐을 풀고 나니 오후가 되어 가볍게 스탠포드로 산책을 하러 갔다. 한번 살아서 그런지 여행지에서 느끼게 되는 조급함이나 피곤함이 없어지고, 조금 여유가 생겼다. 살기 전에는 출장을 오면 어딜 갈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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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호텔이라는 점을 빼면 지난 1년 동안 여기서 보냈던 일요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익숙하게 들르던 곳을 아무렇지 않게 들러 필요한 것을 사다보니 도쿄에서의 긴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자주 가는 한국 마트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사면서 “그 동안 안보이던데”,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같은 소리를 듣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의외로 일주일에 한번 가던 때와 다를 바 없이 “맛있게 들어요” 만 듣고 왔다. 살 때에는 꽤 자주 가서 떡볶이도 공짜로 받곤 했는데, 한 달간의 공백이 전혀 크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주인이 특색없게 생긴 나를 금방 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밥도 먹고 산책도 했는데 시간이 남아 뭘 할까 궁리하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덩케르크가 9월에나 개봉하기 때문에 여기서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호텔 주변에 영화관이 꽤 많았지만, 늘 보던 (예전) 집 근처의 Century 20 Great Mall로 갔다.

예전 집을 들러보겠다는 센치한 이유도 없진 않았지만, 그보다 이 영화관이 드물게 지정 좌석과 리클라이닝 시트를 구비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이곳으로 갔다. 보통은 선착순이라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야 하지만, 여긴 조금 느지막히 영화를 보러 가도 문제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잠깐 조는 바람에 10분 정도 늦었지만, 상영 시간 초반 10분 이상은 광고를 트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음료도 하나 사고 여유있게 입장했다. 심지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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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까지 보고 나니 밤이 되었다. 말 그대로 언젠가 여러번 반복되었을 평범한 일요일 하루를 보낸 셈이다.  익숙한 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 늘 가던 길이라 네비게이션 한번 켜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모든 짐을 버리고, 많은 걸 놓고 도쿄로 갔는데, 막상 돌아오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동안 느낀 생경하지만 친숙한 감정에 어쩐지 허탈해졌다.

출장을 마치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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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의 3개의 생각

    1. 아니 심지어 특색마저 있다니 ㅠㅠ 허나 저녁 시간 신주쿠에 가면 한 100명 정도의 제가 있다는 제보가…

      1. 그런 탓인지 어쩐지 저와 니자는 민상님의 헤어스타일과 안경을 두고 신도깊고 기억나지 않는 토론을 했습니다만 역시 아이가 듣기에는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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