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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글을 좀 자주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그 동안 인생에서 한 수많은 약속과 마찬가지로 지켜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자주 주제가 떠오를 리가 없다. 매일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하려면 품이 든다. 간단하게라도 적다 보면 조금 더 긴 글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에비스 역에서 디자이너 겸 모델을 하는 료마를 만났다. 그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일본 바닷가 마을에서 살다 어느 계기로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아직 21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가 디자인 한 앱이 앱스토어 베스트 앱이 되는 등, 벌써부터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그를 도쿄에서 열린 한 디자인 밋업에서 만났는데, 옆 자리에 앉았던 그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약속을 지킨 것으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을 여기 와서 만나고 있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더 이상 그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게 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스스로 인식하는 나는, 어쩌면 행동으로 드러나는 나보다 조금 더 느릴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에비스 역 바로 뒤에 있는 소바 집에 갔다. 냉우동과 토로로 소바, 그리고 모듬 튀김을 주문했다. 국물이 자작하여 면을 젹셔 먹는 수준이었지만, 면은 아주 알맞은 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살을 넣어 만든 튀김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고, 그 때문인지 고민을 하는 지점도 꽤 달랐다. 이 블로그에 그 내용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므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내가 최근에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그에게 술술 이야기했다. 조만간 도쿄 외곽으로 로드 트립을 가보자는 말을 하고, 우리는 커피숍에서 헤어졌다.

내일이면 새로운 임시 숙소로 옮긴다. 짐 정리를 마치니 막 도쿄에 도착했을 때 보다 조금 가방이 늘었다. 컴퓨터 박스, 카메라 가방 등에 여기 와서 구입한 책들도.

캘리포니아를 떠난 지 이제 한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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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몇 주 전의 일이다. 울산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왔고, 그 결과 한 마을에 6명의 주민이 고립되고 만다. 소방대원이 급히 출동하여 구조에 성공하였으나, 폭우로 인해 급격히 불어난 강물이 대원 중 한명을 덮치고 만다. 실종된 대원의 이름은 강기봉, 그는 결국 실종 11시간만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마주친 이 영상에선, 빈소에 방문한 문재인 전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침통하게 빈소를 지키는 대원들의 손을 잡고, 그를 마주친 대원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문재인은 한참 동안 대원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는다. 눈을 이따금씩 꿈뻑이며, 그는 그렇게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한다. 

우리가 지난 정부에서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그토록 박 대통령에게 분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가 분노한 것은 아이들이 바다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들이 천천히 그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갈 때, 그들을 구하지 못한 무능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갑게 식어버린 자식들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들의 손 한번 잡지 않고, 청와대 앞까지 찾아온 그들을 무시해버린 몰인정함, 비인간성에 분노한 것이 아닐까. 미안하다 한마디를 안하고 “뭐 이렇게 바라는 게 많냐” 며 핀잔을 주던 그녀 옆의 정치인들에 화를 내었던 것은 아닐까.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나라에 사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에 절망한 것이 아니던가.

문재인은 당시 화려한 공중파 촬영팀을 대동하지도 않고, 단촐한 보좌진과 함께 빈소에 왔다. 그를 찍는 카메라는 빈소에 있던 누군지도 모를 – 아마도 소방대원 중 하나이리라 – 사람의 핸드폰 카메라가 전부였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네요”.

그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가. 그 자리에 왔어야 하는 사람은,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던가. 거기서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유능한 정부 같은 건 됐다. 정치인 그놈이 그놈이다, 알고보면 다 똑같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게 겉치례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누가 목숨을 잃었을 때 그들의 가족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면목이 없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살펴보니 문재인은 참 여러 곳에 갔었다. 서문시장 화재현장, 울산시장 태풍 피해현장, 밀양 송전탑, 강남역 추모현장, 그리고 세월호. 한 두번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심이 없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일관되게 할 수는 없다. 단지 최근 4-5년의 일만이 아니다. 그의 인생이 계속 그러했다. 그는 35년을 인권 변호사로 일했다. 27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의뢰인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달변도 아니고, 미국의 여느 정치인들처럼 PC하지도 않은 그다. 최근에 그의 동성애 발언에 대해 큰 실망을 했고, 그 이후의 해명으로도 썩 후련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치열한 대선 토론의 모습보다 대통령 선거도 최순실도 없었던 어느 10월의 장례식장의 그를 더 무겁게 기억하기로 했다. 광화문 천막에서 유민아빠 옆에서 같이 단식하던 그를 기억하기로 했다. 지지자들이 내미는 손을 하나하나 거절하지 못해 피멍이 든 그의 손을 기억하기로 했다.

부고

애초부터 그리 친해질 것 같지 않았다. 처음 우리집에 온 날 녀석은 나를 무척 경계했다. 사촌 형 집에서 하도 사납게 굴어서 1년을 못 채우고 우리 집으로 온 터라, 화도 났을 테고 불안했겠지. 나는 종종 간식을 들고 친해져보려고 노력했지만 인내심이 그리 깊진 못한 터라 결국 늘 실패로 돌아갔다. 취직하여 일이 바빴던 나는 결국 이 녀석과 친해지는 것을 포기했다. 녀석도 그리 협조적이진 않았다. 회사에서 늦게 퇴근하면 어김없이 사납게 짖었고, 이웃에서 불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눈치없게 짖는 이 개가 난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리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내가 자고 있을 때 가만히 내 앞에서 내가 자는 모습을 보곤 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내 침대에 올라와 거칠게 나를 깨우는 발길질 뿐이었지만. 나에게 사납게 짖기 전, 밤늦게까지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들은 건 우리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한 지 꽤 오래 된 이후의 일이다. 며칠 동안 출장을 갔을 때엔 괜히 내 방을 서성였다고 한다. 괜히 내 옷에 배인 내 체취를 맡거나, 내 물건들을 건들거나 하는 식으로 나를 궁금해 한 것 같다. 하지만 난 ‘나를 아예 남으로는 생각하지 않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늘 서로에게 데면데면했다.

부모님은 무뚝뚝한 나 대신 녀석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 하셨다. 녀석도 부모님을 잘 따랐다. 세 가족은 아주 친밀해졌고, 나는 그렇게 녀석은 물론 부모님과도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며 집은 잠만 자는 곳으로 여기게 되었고, 이윽고 해외 취업을 핑계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버렸다. 2시간 떨어져있는 도쿄를 넘어, 어느새 난 하루 가까이 시차가 나는 미국으로 와 버렸다. 처음 집을 떠날 때 배웅하러 온 녀석이 이상하게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멀리 떠나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출국 심사장을 들어가는 나를 보며 뭐라 말하듯 크게 짖어대었다. 나는 쏠리는 시선이 부끄러워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함께 산책을 나간 적이 거의 없다. 내가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딱 한번 산책을 나간적이 있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고, 우리 둘만 집에 남았을 때 나는 멋쩍게 그녀석에게 목줄을 들이밀었고, 녀석은 못이기는 척 목줄을 했다. ‘내심 산책은 가고 싶은거구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파트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녀석은 처음엔 가만히 서있다가,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팡질팡했지만 이윽고 우리는 가볍게 아파트 단지를 돌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이 “강아지 참 이쁘다” 며 다가올 때 내 뒤로 숨는 녀석을 보며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산책이었다.

녀석은 꼬박 9년을 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반려동물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빨리 간다. 녀석의 이름은 리치다. 부잣집에서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리 부잣집에서 살진 못했다. 하지만 풍족한 사랑을 받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생을 마감했다.

리치는 2017년 2월 2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유해는 화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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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달리기

한동안 살이 찔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 영원할 줄 알았던 20대, 중반이 넘어가니 어느 새 나도 먹는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운동을 해서 몇 번인가 10kg 가량을 뺐던 일이 있다. 특별한 운동을 하진 않았고, 좀 덜 먹고 달리기를 해서 뺐다.

그렇다고 해서 근육이 울퉁불퉁한 몸짱이 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도저히 봐줄 수 없던 몸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몸으로 돌아간 효과를 보고선 살이 좀 쪘다 싶으면 달리기를 한다. 최근에도 살이 좀 불었다. 한참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사를 오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 저것 미루다보니 결국 한동안 달리기를 그만둔 탓이다. 혼자 지내니 그러거나 말거나 지내다가, “헉 이 뱃살은 뭐야” 라는 핀잔을 듣고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보여줄 사람이 다시 없어졌으니 굳이 할 이유도 없게 되었지만, 시작했으니 굳이 멈출 이유도 없다.

아무튼 뛰는 것은 밖에서 뛰는 것이 좋다.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고, 풍경도 계속 바뀌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끝나고 편의점에 들러서 이온음료(포카리 스웨트, 일본에 살 때엔 그린 다카라를 즐겨 마셨다)를 사 마시는 것도 나름의 재미이다. 애플 워치를 사기 전까지는 그냥 대충 5km 정도 되겠거니 하는 거리를 뛰었는데, 사고 나서는 칼로리를 재며 달렸다. 이건 좀 덜 지루하지만, 효과도 덜하다. 살이 가장 잘 빠질 때는 몸이 가장 힘들 때인것 같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헉헉대며 들어와 씻고 거의 쓰러지듯 자면, 다음 날 조금은 살이 빠진 느낌이 든다. 하루만에 그렇게 빠질 리는 없으니 착각이겠지만.

그런 면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힘든 달리기 방법은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건 풍경이 바뀌지도 않고, 무식하게 생긴 기계 위에서 반 강제로 달리니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다. 힘들어서 좀 천천히 뛰려고 하면 복잡한 기계를 만져야 하는데 이 때 느끼는 굴욕감이란, 마치 기계에게 패배 선언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나를 괴롭히면서 운동을 하면 아무래도 성과가 눈에 보이게 된다. 밖에서 달릴 때보다 땀도 훨씬 많이 나고, 숨도 더 많이 찬다. 풍경을 보는 즐거움도, 끝나고 마시는 이온음료도 없으니 그냥 괴로움 뿐이다.

그러니 뛰기 전이 늘 문제이다. 몇번 이 지옥같은 경험을 하고 나면 아무래도 가기 싫어진다. 최근에는 밤 10시 정도에 아파트에 있는 짐(Gym)에 가려고 하는데, 9시쯤 되면 ‘오늘은 아무래도 다리도 아프고 하니 딱 하루만 쉬고 내일 하자’ 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이번엔 150kcal만 태울 거야’, ‘내일은 열심히 하고 오늘은 10분만 뛰자’, 이렇게 트레드밀에 올라가고는 결국 30-40분을 뛰고 만다. 거짓으로 세운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엔 반기는 몸과 악랄하게 목표수치를 올리는 머리가 따로 노는 기분이다.

오늘도 난 결국 머리를 따라 목표치 이상을 채웠다. 문제는 스스로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다보니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쉬기로 한 기존의 계획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오늘은 쉴거야” 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목표치가 조금씩 올라가서 “뭐 가볍게 10분만 뛰고 오지, 소화나 시킬 겸” 하고 트레드밀에 올라가 30분을 뛰고 있다.

대체 이 거짓말의 고리를 어디서 끊어야 할까. 내일은 반드시 쉬어야 겠다.

 

된장찌개

오늘은 친구 맥스를 만났다. 이 친구하고 알게 된 지는 3년 정도 된 것 같다. 프랑스인인데 방콕에서 살았던 특이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맥스와는 늘 팔로알토에서 만나서 파스타를 먹고, 그대로 스탠포드까지 쭉 걸어가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헤어지는 루틴을 밟고 있다. 이렇게 한 지가 벌써 2년 정도 되어간다.

오늘도 오랜만에 만나 3.2 마일 정도를 걸었다.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끝내 오지 않았고, 덕분에 딱 기분 좋은 온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었다. 2월 중순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캘리포니아에 살면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늘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적당히 웃었다. 맥스와 이야기하며 닌텐도 스위치가 2주 뒤에 발매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주문을 해 놓았는데 언제 나오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도 나도 “젤다의 전설”을 꽤 기대하고 있다.  과연 실제로 게임을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번에 산 레지던트 이블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된장찌개 재료를 샀다. 재래식 된장, 두부, 파 그리고 감자. 우선 파 손질부터 한다. 육수 용 파뿌리를 자르고, 나머지는 적당히 썰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냉동실에서 다시마와 건멸치를 꺼내어, 멸치 손질을 하고 파뿌리와 함께 냄비에 넣고 물을 500미리 정도 붓고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파뿌리와 다시마를 꺼낸다. 너무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난다.

감자 껍질을 벗기고, 먹기 적당한 크기로 썬다. 양파도 1/4쪽 정도를 꺼내어 썰어둔다. 다시 냄비 뚜껑을 열고 된장을 크게 한스푼 풀어넣고, 고추장은 된장의 1/3 정도를 넣어 마찬가지로 슬슬 풀어둔다. 파뿌리를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훨씬 맛이 시원해진 느낌이다. 국물 맛을 보고, 적당하다 싶으면 멸치를 꺼낸다. 멸치를 꺼내고 난 뒤엔, 썰어둔 감자와 양파를 넣는다. 불을 조금 약하게 하고 5분 정도 기다린다.

두부는 반모 정도를 넣는다. 처음부터 넣지 않는 이유를 어디서 봤는데, 사실 재탕 삼탕을 해서 끓여먹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반모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넣고, 불을 조금 약하게 한 후 뚜껑을 덮어, 15-20분을 끓이면 완성이다.

파뿌리 덕분인지 이전보다 괜찮은 맛이 났다. 많이 걸어서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규동

오늘은 규동을 해 보았다. 조리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름을 적당히 두른 팬에 양파를 썰어 볶는다. 그리고 고기를 조금씩 넣어가며 계속 볶는다. 고기를 한번에 넣는 것 보다는 조금씩 넣는게 좋다고 하는데 난 성미가 급해서 그냥 두 번에 나누어 넣었다. 고기가 샤브샤브용이라 굳이 안풀어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쯔유와 간장을 넣는다. 여기서 이 어느 정도가 늘 애매한데, 처음에는 이 레시피 저 레시피를 보아가며 정확하게 분 단위로 가이드 되어 있는 것을 따라하다가 몇 번 맛을 봐 가면서 점차 “어느 정도”에 대한 감을 찾아가는 것 같다. 이번엔 쯔유가 조금 많이 들어갔는데, 다음엔 진간장 7에 쯔유 3, 혹은 그 이하의 비율로 쯔유를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달았다.

이렇게 볶다보면 흔히 스키야나 요시노야에서 보던 비쥬얼이 만들어진다. 퍽퍽해 보인다 싶으면 물을 조금 넣는다.

냄비밥을 하고 남은 찬밥을 넉넉히 떠, 40초 정도를 돌렸다. 너무 뜨거운 것 보다는 조금 차갑다 싶은 것을 좋아한다. 모름지기 규동은 밥과 고기를 젓가락이 감당안될 정도로 떠서 입에 우겨넣는 맛 아니던가. 지난번에 달걀을 넣었을 때 끝맛이 조금 역해서 이번에도 넣을까 말까 고민을 했다. 미국 달걀이 맛이 다른건지, 일본에서 넣어 먹던 날달걀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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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밥 위에 고기와 양파를 올리고, 소스를 조금 부어준다. 중간을 살짝 비우고, 달걀을 깨서 휘휘 저어가며 먹으면 끝이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는 달걀이 좋았지만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그냥 넣지 않는 편이 좋겠다. 미국 달걀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릇 하나라도 바로 씻는다. 그릇 하나라고 해서 널어놓으면 그 다음에 또 쌓이고, 다음에 또 쌓이고, 결국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된다. 최근까지의 내가 그랬다. 하나씩 미루고, 둘씩 미루다 보면 결국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나 온디맨드 코리아(한국 방송만 나오는 넷플릭스라고 보면 된다)에서 봤던 프로그램을 보고 또 볼 뿐이다. 조금씩 가볍게 처리하는 편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면 한 시간 정도가 흐른다. 번거롭지만 충실한 시간들이다.